재활은 꼭 해야 할까?

('저절로 낫는다던데...?')

 


 

병원에서 환자분의 재활운동을 하다 보면 인지가 있는 상태로 가정했을 때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느껴집니다.

  1. 재활운동을 열심히 참여하시는 분
  2. 그렇지 않은 분

 

발병 이후, 혹은 다친 이후, 본인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답답한 상태일 텐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오는 걸까요? 이번 글은 환자분 혹은 보호자분께서 가지고 계실만한 내용 중 하나인 '저절로 낫는 게 아닐까?'하는 가상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약만 먹고,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는데...

과연 이 말은 참일까요? 아닐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이 잘 풀려서 잘 낫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이미 지난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기에 누군가 저절로 낫는데 재활이 필요할까 묻는다면, 저절로 낫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지 않고 잘 안됐을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답을 드리는 편입니다.

제가 주로 보는 환자는 신경계 손상 환자입니다.

하지만 뼈가 부러진 환자분의 예도 여기에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뼈가 부러진 A 씨. 뼈가 부러져서 깁스(석고붕대)를 일정 기간 동안 차고 다니며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부위는 어떻게 될까요? 그럼 가정해 보는 겁니다. 운동적인 부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는 것이죠.

 

여기서 저절로 낫는다는 가정의 한계점이 나타납니다.

재활은 본인이 사용하던 혹은 사용할 수 있는 최대 범위까지 이끌어내는 과정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내 몸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 인식이 없는 경우 임계지점을 너무 낮게 설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운동을 꾸준히 해온 사람의 경우에는 쌓아온 지식 덕분에 지점 설정이 용이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일반인의 경우에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아서 상담하고 평가받고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석고붕대를 풀고 움직이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일상생활을 시작한 A 씨,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금방금방 낫는 것 같아서 활동의 양을 늘리다 보니 어느새 다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감을 느낍니다. 사실 이렇게 된 경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이 시기에 다친 곳에 조금 더 신경을 쓴다면, SF 영화에서처럼 보호막을 차는 효과를 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친 부위가 근골격계, 즉 뼈와 근육 관절 같은 게 상태가 좋아졌다는 것은 맞지만, 우리 움직임에 관여하는 것은 근골격계 뿐만 아니라 신경계도 있습니다. 팔다리의 근골격계가 튼튼한 인부라면, 신경계는 효율적으로 관리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친 것에서 회복했다는 것은 실제 사용되는 구조물이 회복되었다는 뜻이고, 상황에 맞춰서 조정(Modulation) 하는 능력까지 회복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낫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이 일주일만 쓰지 않고 밥만 먹고 가만히 누워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제아무리 항상성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몸은 필요하지 않는 근육을 재생성하는 일은 없겠죠?

여기서 항상성은 원래 상태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입니다. 즉 우리 몸은 각자 기본값을 갖추고 있어서 그 기본값을 향하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체온도 그렇고, 체중도 그렇고, 유전적인 요소가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이 크게 다친 경우, 뼈가 부러진다든지 뇌나 척수와 같은 중추신경계 손상이 일어난 경우에는 워낙 사안이 중대하다 보니 우리 몸의 항상상인 기본값 자체가 다시 재설정되기도 합니다. 아니, 그 혼란스러움에 엉뚱한 기본값이 잡히기도 합니다. 재활이라는 것이 그 기본값이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아 참, 중추신경계는 새 살이 돋는 것처럼 저절로 모든 것이 낫지는 않습니다. 약물뿐만 아니라 스스로 움직임을 재교육하여야 돌아온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안 해도 다 나았다? 축하드립니다. 다만 위에서 소개한 임계점과 모듈레이션은 떠올려주시길 바랍니다.


 

복잡하게 늘여 썼지만 간단합니다.

쓰지 않으면 퇴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다칠 경우 회복하는 과정에서 내 몸의 항상성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거나, 더디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집중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서두에 재활을 잘 참여하는 분, 아닌 분의 예를 들긴 했지만 동기(Motivaiton)는 너무나 많은 요소에 영향을 받는지라 무엇 하나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신체적인 요소, 정신적인 요소, 사회적인 요소까지... 어느 하나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고, 여태까지 살아온 개인의 History까지 연관되어 있기에 함부로 잘하고 있다 아니다를 판단하기도 어렵기도 합니다.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어떤 큰 사고를 겪게 된다면 그래도 한 가지만 떠올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록 재설정되기도 하고 엉뚱한 값이 설정되기는 해도, 우리 몸은 한시라도 되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있고, 게다가 신경 가역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해서 제 일을 다시 되돌리려는 기전도 있으니, 일어난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좀 더 채워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조종할 수는 없습니다. 바란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섣부르게 너무 방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 필요한 것을 하나씩 채워나가시며 조금 더 높은 단계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터널이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터널의 끝은 분명 있을 겁니다. 꾸준히 뚜벅뚜벅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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